레이블이 하나님의교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하나님의교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인생의 목적

[하나님의교회] 인생의 목적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푸념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야 하니 먹고 살아있으니 자고 일어나니 일을 하는 일상의 쳇바퀴를 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원래 하늘의 천사였다가 죄를 지어서 이 땅에 내려온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이 지구는 죄인들만 모여 사는 일종의 감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옥에서 벗어나 원래 살았던 천국으로 돌아가려면 기억에는 없지만 하늘에서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다 갚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의 감옥을 보더라도 죄수가 자신의 죄값을 다 치루거나 사면을 받기 전에는 교도소에서 나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죄는 어떤 죄였을까요? 어떤 죄인지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그 죄값을 갚아나갈 지 가늠이 되지 않을까요?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우리 죄는 사망, 즉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늘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은 이 지구라는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서 영혼이 되면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형벌로 사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이래로 어느 누구도 육신의 죽음을 피해갈 수 없게 만드신 이유는 우리가 하늘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결국은 죽음으로 그 끝을 맺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지구가 사형수들만이 모여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왜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고 슬프고 괴로운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다만, 우리 죄에 대한 사면을 받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그런데 우리 죄에 대한 사면의 방법이 그리스도의 피에 있다고 성경은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피를 통해 나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을까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듯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그 사실을 "믿기만"하면 사함 받을 수 있을까요?

마 26:17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우리가 죄인이고 우리 죄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야만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 성경을 살펴보면 어떻게 예수님의 피와 내가 연결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새 언약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에 따라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덧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믿기만 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당신의 피라고 말씀 주신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는데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끔찍한 죽음을 감내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하나님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가야 할 곳으로 가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말씀 그대로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전파하며 우리의 영원한 고향, 천국으로 가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22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마리아는 성모인가?

[하나님의교회]마리아는 성모인가?








카톨릭에서 마리아는 성모로 예수님과 성도들간의 중보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에서도 늘 마리아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마리아는 단지 예수님의 육체의 모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시기 위해 배를 빌린 여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 근본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성모(=어머니)로 부르게 되면 예수님과 마리아가 부부가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리아는 하나님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피조물의 몸을 잠시 빌렸다고 해서 그 피조물이 창조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행위는 한 분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십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마리아 숭배와 관련된 카톨릭의 교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떠난 후에 생겨난 것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니고 사도들의 가르침도 아니고 성경적인 교리도 아닙니다.

1. 마리아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낳은 분이므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교리는 A.D.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채택되었습니다.


2.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은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가 선포하였고 14년 후에 '바티칸 회의'를 통해 확정되었습니다.


3.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 그리고 낳은 후에도 종신토록 동정녀(숫처녀)였다고 주장하는 마리아 종신 처녀설은 맨처음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0~403)가 확립하였고 점차 발전하여 1962년 제 2차 바티칸 회의(1962~1965)에서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성경을 통해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형제들을 낳았고 동정녀로 지내지 않았습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요 7:2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요 7: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4.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리아 부활승천설은 처음에는 [동정녀의 승천]이라는 책에서 주장했던 것으로 당시 천주교회는 이것을 사탄의 기만이요, 간책으로 선언하였지만 후에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1950년 12월 1일 천주교황 피우스 12세가 정식으로 선언하였다.


이처럼 마리아를 '성모'라는 이름으로 신성시하게 된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하늘로 돌아간 후에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마리아와 예수님을 함께 묶어서 경배하는 것은 그 기원을 모자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초대교회에서 새롭게 생긴 전통이 아닙니다.

천주교회의 마리아상 숭배의 기원은 바벨론 종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니므롯(창 10:8)의 아내가 남편이 죽자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담무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 담무스라고 거짓말을 하여 모자숭배를 종용하게 됩니다. 이 바벨론의 종교가 독일에서는 여신 헤르다의 숭배로 바뀌고 인도에서는 인드라니 애굽에서는 여신 이시스와 호러스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에 들어와서는초대교회와 접목하여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형태만 변화되었습니다. 마리아 숭배사상는 명백한 비성서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우상숭배를 배척합니다.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십자가는 우상숭배다

[하나님의교회] 십자가는 우상숭배다




예전에 십자가의 디자인을 공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교회를 다니고 나서부터 그 부분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버릇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도 하나님, 나의 아버지, 예수님을 사랑한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아버지로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정작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십자가에 모양을 그리고 형태를 디자인하는 행동이 과연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기억하며 그 희생을 기념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정작 수십, 수백가지의 십자가 모양은 왜 존재할까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 "십자가" 하나만 있으면 될텐데?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십자가는 하나님께 저주 받을 우상숭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십계명의 두번 째 계명 우상숭배하지 말라 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절하고 섬기는 것을 떠나 만드는 행위부터 금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도 하나의 형상입니다. 십계명에 십자가 형상은 만들어도 괜찮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이끌어 갔던 초대교회에서도 십자가를 형상화했던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예수님의 끔찍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저주받은 나무요, 사형틀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예수님 때에 와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신양성경용어 주석사전에 의하면 십자가는 고대 갈데아의 바벨로니아 사람들 가운데서 유래되었습니다.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 형태는 고대 갈데아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Tau:히랍의 아파벳으로 영어의 T와 같은 글자)모양임)

즉, 십자가는 이방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로마시대에는 사형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교회로 유입된 것은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가 이교화되어가자 세속화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교도들을 더 많이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이교도들의  사상과 상징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방 여신을 섬기고 숭배하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적응할 수 있도록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대신 섬기도록 하였고 십자가 형상 앞에서 이교의 신들에게 경배하던 개종자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으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상을 교회 내에 유입하여 그들로 숭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교도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위해 도입햇던 이교도의 사상이나 상징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교횡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든 신자들이 그 상징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나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우상이 십자가, 마리아상, 성인상 들입니다.


십자가에 아무리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여도 성경으로 바라보았을 때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는 행위는 저주받을 행위일 뿐입니다.




2013년 2월 8일 금요일

하나님의 교회 정통성[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 역사는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교회사가 곧 하나님의교회 역사임을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이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 19~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수장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House-church(가정예배)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으로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즉,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86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교리의 변화와 함께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1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그 종착점은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진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신학 교수를 거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티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티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하나님의교회가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됐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이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3년 2월 3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님)-오케스트라


매일신문 노정희 기자   2013-01-31


아름다운 음악-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회 
세상에 사랑 전한 감동의 클래식


성가대 대신 오케스트라, 찬송가 대신 클래식.


25일 대구 북구의 한 교회에서는 
청소년들과 지역주민, 신자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학업과 일상에 지친 청소년들의 노고를 달래고 메마른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만든 행사.



행사를 주관한 윤정룡 목사는 
“세상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 음악회를 기획했다”며 
“새 학기를 맞는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행사 취지를 밝혔다.



동네의 작은 교회 음악회라고 가볍게 여겼다간 큰 오산. 
이번 음악회는 단원 61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중창단까지 동원된 
웬만한 소도시의 시향(市響)급 관현악단이다. 
1시간 동안 계속된 연주회에서는 
주페의 ‘경기병 서곡’, 드보르자크의 ‘슬라브무곡’ 등 
경쾌한 연주곡과 
‘어메이징 그레이스’ ‘모세의 지팡이’ 같은 성악곡들도 펼쳐졌다. 
학생들을 위한 자리인 만큼 ‘이웃집 토토로’ 같은 깜짝 앙코르곡도 준비됐다. 
이날 음악회엔 학생, 신자, 주민 등 1천3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오전 리허설 무대까지 개방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연주회를 관람한 김영화(16) 학생은 
“모처럼 웅장한 관현악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며 
“청소년들을 위해 이런 축제를 마련해준 교회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는 대구에서 25일에 연주가있었네요~

방학동안 학생들이 게임에 빠지지않고 
여러 문화를 즐기는것도 좋은 것  같네요!



2013년 2월 1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김주철총회장님의 책자-어머니의 소원



하나님의교회 김주철총회장님의 책자
어머니의 소원



오랜만에 '어머니의 소원'을 읽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려는 마음으로 '1장 그리스도인의 생활'부터 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답에 대하여 자세히 나와있다.

하나님의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은 엘로힘 하나님을 믿는다.

엘로힘하나님은 성경이 증거를 하고 있다.
진리를 따른는 사람이라면 행하는 모든것이 은혜로워야 한다.

'우리의 생활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갖추어 
우리가 곧 살아 있는 성경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성경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한다...

일단 성경을 열심히 상고해야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상고하면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김주철 총회장님의 책자를 읽어보면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게된다.

앞으로 김주철총회장님의 책자와 성경 그리고 아버지 책자까지도 열심히 읽어서 
살아서 움직이는 성경의 모습이 되야겠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엘로힘하나님을 믿기에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새언약안식일은 하나님의계명?





마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커녕 지옥에 가지만 않기를 바래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고싶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일까요?


*새언약안식일*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보는 날 마져 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에 예배를 봅니다.

과연 성경이 일요일에 예배를 보라는 말씀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무슨 요일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안식일이 무슨 요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막16:9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예수님께서는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안식후 첫날 입니다.
일단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안식일은 부활하신(일요일) 전날이군요. 바로 토요일이 됩니다.

성경을 통하여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새언약안식일은 하나님의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면 우리 또한 지켜야겠지요?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성경을 읽었다라는 것은 예배를 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자기규례대로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지키신 안식일을 지켰을까요?

행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바울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이후에 들어온 사도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친에 따라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요?



새언약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사람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계명을 따르는 하나님의교회가 진리교회입니다.




2013년 1월 26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진리인가?-(무엇을 보고 따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정답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 인들은 성경을 보곤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가지고 올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보시면..

요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분명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7:21-23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세 밝히 말하되 
가 너희를 도무지 아리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주여주여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여주여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지키셨던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 등...3차의 7개절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증거되어있는 새언약안식일과 새언약유월절을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새언약안식일과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절기를 지키는 시온입니다.



새언약안식일과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가 진리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새언약안식일/새언약유월절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어머니사랑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매일신문


매일신문 2013-01-15

빙판길 제설작업 활동



하나님의교회 대구 3달서교회 학생들은 
13일 이곡2동 주변도로 일대에서 거리정화운동을 실시했다. 

학생부 50여 명은 주택가,
 상가 밀집지역을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고 
빙판길 제설 작업을 펼쳤다.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증회/하늘어머니

요즘같은 세상에는 학생, 어른 할것없이 
삭막한 사회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인 
어머니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고 있다.


온 세상이 어머니의 사랑을 알 때까지!!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사람과 영혼

하나님의 교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 안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류 최대의 의문, 수많은 철학자들을 탄생시킨 질문,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www.pasteve.com)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경기일보-청소년의 내면에 음악을 담다

경기신문 이동훈기자   2013-01-15



청소년의 내면에 음악을 담다
교회소속 중·고생 등 구성 11개 도시 순회… 새학기 앞둔 학생에 희망멜로디 전달
하나님의교회, 21일 음악여행 공연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는 21일 성남 분당에 위치한 하나님의교회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움 & 다움’을 위한 환상의 음악여행 공연을 연다.


하나님의교회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11개 도시 전국 순회 공연을 열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100인조 관현악단 ‘메시아 오케스트라’와 교회 소속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학생 오케스트라’가 참여하고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된다.

 

학업 스트레스와 학교폭력 문제 등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물론 평소 마음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던 학부모와 교사들도 초대돼 소통과 화합의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을 위한 연주회인 만큼 경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우리 귀에 친숙한 클래식, 애니메이션 OST, 천상의 선율 새 노래 등으로 레퍼토리가 구성됐다.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등 관악기의 특성을 살려 위풍당당한 경기병의 행진을 빠르고 경쾌하게 묘사한 주페의 ‘경기병 서곡’, 우수가 담긴 서정적 주제의 선율을 경쾌한 왈츠에 담아낸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감상할 만큼 경쾌하고 힘찬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거룩한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인 ‘이웃집 토토로’의 OST 등을 연주한다.

 

하나님의 교회 관계자는 “빈 병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물병이 되기도 하고 꽃병이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이 성장기의 학생들도 내면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성과 성품, 가치관, 나아가 미래가 달라진다”“이번 연주회가 새 학기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과 꿈을 펼쳐나가는 데 큰 힘과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하나님의 교회는 해마다 학생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개최하여 음악을 통해 학업스트레스 및 학교폭력문제, 청소년 인성교육 등에 도움을 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